34장 10-35절
출애굽기 34장 10-35절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너의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언약을 세우나니” 언약은 두번째 돌판에 대한 언약이다. 이 말에
해당하는 '카라트'는 원래
'자르다', '베어내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계약을 체결할 때 고기를 '베어' 조각낸 뒤 계약의 당사자들이 그 사이로 지나갔는데, 여기에서 '카라트'가 '계약을 맺다'는 뜻으로 전용되었다. 한편 이 말의 명사형인 '케리트'는 '절단'이란 뜻인데 같은 이유에서 '계약'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행하지 아니한 이적” 이는 이스라엘이 향후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놀라운 역사를
가리킨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요단 동편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정복 사건(신2:26-3:17), 요단 강물이 멈춘 사건(수 3:16,17),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수 10:12-14) 등이 있다.
“행하심(마아세)” '만들다, 행하다, 성취하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닌 아사에서 유래한 말로 '행동, 일, 활동 등의
의미를 지니는데 특히 작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 또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전에 행하신 출애굽 사건과 이후 행하실 가나안 정복 사건이야 말로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11.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삼가 지키라(샤마르)” '준수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란 뜻을 가지고 있다. '네 스스로, 너를
위하여'라는 뜻의 '레카'가
결합된 강조문이다. 특히 샤마르는 세밀하게 보다는 뜻을 갖고 있다.
아모리 사람과...여부스 사람은 가나안의 후기 원주민들로 불리우는 족속 들이다. 신명기 7장 1-2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어떤 역사적인 사실과 연관하여 영적 교훈을 준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며, 이는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이 흙속에 갇히므로 인간이 된 것이다. 첫사람 아담이 육체가 되어 인간들에게 죽어야 할 죄의 몸을 주었고, 마지막
사람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 해결하신 것이다. 이게 세례이다. 물세례는 옛사람(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혼은 더렵혀져서 인간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없다. 혼은 옷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불(성령)에 태워지고 하늘로부터 오는 옷(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 창세기 35장 2절에서『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이게 성령 세례이다. 성령세례를
받는 자는 부활된 것이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부활이 이루어지면, 성도의
심령에 성전이 세워지고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심령 속에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같은 것이 남아 있어 이를 제거해야만 한다. 신명기 7장 1-2절에서 처럼 싸워 이기라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인공지능 등이다. 이전의 “나” 라는 정체성이 바로 이 일곱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엘로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도가 되고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도 이 일곱가지의 악한 모습을 부셔야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고 가신다.
12-13.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찌어다
“올무가 될까 하노라” 문자적으로는 올무가 되지 않도록이다. 즉 올무가 되지 않도록...언약을 맺지 말라'는 뜻이다.
“헐고...깨뜨리고...찍을지어다” 출애굽기 23장 24절의 '훼파하며...타파하고'란 명령보다 한층 강도 높은 표현이다. 훼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스'는 '헐다' 정도의 뜻인데 반해 본절의 '헐고'에
해당하는 '나타츠'는 '부숴버리다'라는 보다 강도 높은 뜻이며, 또한
'찍을지어다'의 '카라트' 역시 '산산조각내다'는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3:24에서 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상 타파를 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금송아지 사건'(32:1-6)에서 보듯 우상
숭배 금지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상(맛체바)” 종교적인 목적으로 세운 비석으로, 곧 우상에게
봉헌 된 기념비를 가리킨다
“아세라 상(아쉐라우)” 축적하다,
부해지다는 뜻의 '아샤르'에서 유래한 말로 '풍요의 신'으로 알려진 가나안의 여신이다. 이 신은 고대 근동의 여러 족속 중 특히 아모리족과 가나안족이 숭배한 여신으로서 아낫과 아스다롯과 더불어 가나안의 3대 여신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신은 생육, 생산의 신인 바알과 부부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따라서 이들 두 신의 숭배에는 필연적으로 성적인 타락이
수반되었다. 한편 처음 언약(23:24)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아세라가
여기서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종교를 본받아 성적 타락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기 위함이었다.
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질투의 하나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분으로 묘사되는데, 그것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에게 애정과 헌신을 바치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에게 돌아올 고유한 영광이나 찬양이
자신의 피조물인 다른 대상에게 엉뚱하게 돌아갈 때, 그리하여 그 백성의 영혼이 헛된 우상에게 빼앗길
때, 당신의 속성상 우러나오는 그러한 공의로써 그러한 행위를 질투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다시금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은 다시는 금송아지 숭배와 같은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15.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12절 내용의 재차 반복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과의 언약 체결을 강하게 금지하시고 있는 까닭은 이스라엘이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이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는 백성이므로 또다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민족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이나 의무를 지게 되는 언약을 이중으로 맺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언약을 맺게 되면
서로 상대방의 신을 인정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대의 관례였으니 하나님께서 그처럼 우상 숭배와
직결되는 가나안인과의 언약 체결을 금지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음란히 섬기며” 이에 해당하는 자나는 '간음하다, 창기가 되다'(창기의 행위를 하다),
'매춘하(러가)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신을 음란히 섬기며”를 직역하면 '그들의 신에게 매춘하러 가며' 혹은 '그들의 신을 좇아 매춘(행음)하며'가 된다. 이처럼 가나안인들이 신을 음란하게 섬기는 것은 그 종교의
속성이었으며 특히 이들 종교의 여사제는 공인된 창기였으니, 신에게 제사 드리러 나오는 남자는 곧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그러한 신을 대리한 이들 여사제와 성관계를 갖는 것이 곧 신과 접촉하는 예배 행위였다.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이 말은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 제물을 취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물론 제물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금하는 까닭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진 이상 히브리인들의 의식법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며 둘째, 그것이 우상 숭배를 위한 사악한 목적에 쓰여진 것임을 알고서도 거리낌
없이 취한다는 것은 곧 우상 숭배 자체를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 8:1-13).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광야 여행 중 싯딤에 머물 때 모압 여인들의 초청에 응해서 우상 제물을 먹고,
신들에 절하며, 행음까지 함으로써(민 25:1-3) 이 명령을 어기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하나님과의
약속에 대한 계속적인 거역과 위반으로 점철되어졌는데, 그 결과 그들은 계속해서 광야에서 맴돌 수 밖에
없었다.
16.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자나) 섬기며
네 아들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그들의 딸들로...아내를 삼음으로” 세상에 노아홍수가 임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데 있었다(창 6:1-7). 하나님의 아들들은 약속의 씨가 있는 자들, 사람의 딸들은 약속의 씨가 없는 자들이다. 아들이 섞이는 것은 결국
영적 간음에 해당되는 것이다. 또한 솔로몬의 타락도 이방 여인과의 결혼에서 비롯되었으며(왕상 11:1-8), 결국 이는 이스라엘 왕국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왕상 11:9-11). 이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과의
결혼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엄격히 금하셨는데, 오늘날에도 불신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전 7:39;고후6:14-18).
히브리어 자나는 매춘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신에게 매춘하러 간다는 것이다. 영적 간음을 의미한다.
17.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
20:23을 반복한 말씀으로서 곧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거듭된 경고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었기 때문에(32:8), 여기서도 부어 만들지 말라고 지적함으로써 그들의 죄를 상기시키고 있다.
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무교절” 유월절로 시작되는 7일 간의 축제(12:15-20)로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떡을 먹기 때문에 무교절이라 했으며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아빕월” 일명 니산 월이라고도 하는데(느 2:1;에3:7) 유대 종교력으로는 1월, 민간력으로는 7월, 현대
태양력으로는 3-4월을 가리킨다.
19. 무릇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숫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출애굽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초태생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돌릴 것을 명하셨는데, 이는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인 초태생을 죽인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같은 명령이 반복되고 있는 까닭은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한편 이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고전 15:23;골1:18)와 더 나아가 영적 장자되는 믿는 자(히12:23)들의 헌신을 상징한다.
20.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나귀의 첫새끼는...대속할 것이요” 레 11:2-7에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동물의
목록이 있는데, 나귀는 그 가운데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나귀는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 없는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던 것 같은데 이는 가축으로서 제물로 드려지지 않았던 짐승은 나귀 뿐이었음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따라서 나귀는 부정을 면키 위해 어린양으로 대속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여야 했던
것 같다.
“대속(파다)” '몸값을 받고 석방하는 것'을 뜻한다. 나귀와 같이 제사에 적합치 못한 짐승은 어린 양으로 그 값을 대신했고, 사람일
경우에는 돈으로 대속하도록 했다(30:12-16).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말지니라” 여기서 '얼굴'로
번역된 '파나'는 '앞에'라는 뜻도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대로 정성껏 예물을
드리라는 명령이다(신 16:16,17). 그렇다고 해서 이를
헌금강요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창조자로서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함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감사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의 마음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문자적 뜻은 밭 가는 때와 거두는 때의 안식일로서 즉 파종기와 수확기에도 안식일을
지켜야 함을 강조해 주는 표현이다.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칠칠절”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농작물의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이다.“수장절”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한다.
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매년 세 번씩”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무교절, 오순절, 장막절의 때를 말한다. 그리고 이때마다 '하나님 앞에 보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나타나라'는 말과 동일한데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4.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러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지경(게불)” 본래 의미는 '끈'으로서 곧 '경계선'을
의미하며, '경계','한계',
'지역', '공간'등을 뜻한다. 한편 23:31에서는 이스라엘의 지경을 사방으로 최대한 넓혀주겠다는
강도 높은 약속이 나와 있는 반면 여기서는 그 약속의 강도가 약화되어 있다.
“하나님께...올 때에...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신 12:1-14에서 가나안 정복
이후 제사 조직이 지방에 난립할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모두 함께 모여 공식적인 제사를 드릴 곳, 즉
유일한 중앙 성소(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명하셨다. 따라서 매년 세 차례 이스라엘에는 전 지경에서 남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빠져 나가는 공동현상이 생겨나게 됨으로써(눅 2:41,42)지역 방위의 문제가 생기는데, 하나님께서는 본절에서 바로 이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25.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찌며
희생의 피는 죄를 속하는 것인데 반해, 유교병은 죄악의 상징인 누룩이 들어 있기 때문에
함께 드려질 수 없었다.
26. 네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처음 익은것” 동일한 말이 23:19 에서는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의 문자적인 뜻은 처음 익은 열매의 제일 좋은 것이 된다. 본절에서는 첫것(제일 좋은것)이란 말이 빠져 있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가나안 풍습을 따르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들의 뜻대로” 이 말들을 따라이다. 여기서 이 말들은 먼저 맺었던 첫번째 언약(20-31장)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첫번째 언약을 따라 동일한 내용으로 두번째 언약을 맺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기서 세우는
언약이 첫번째 세운 언약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의 회복임을 보여준다.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모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체결의 중재자이지만 그 역시 이 언약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집단적으로 언약을 맺으시면서 동시에 모세 개인과도 언약을 맺으시는
것이다.
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사십 일 사십 야” 결과적으로 모세는 지난번의 40일(24:18)과 이번의 40일을 합하여 도합 80일을 금식한 셈이다. 이것은 첫번째 언약을 맺은 때와 같은 조건(성경에서 '40'이란 숫자는 연단과 시험을 나타내는 수이다)에서 두번째 언약을 맺었다는 뜻이다. 상황적으로 미루어 볼 때 오히려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두번째 언약을 맺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는 한번 파기된 관계를 다시
맺는 것은 그만큼 더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는... 기록하셨더라(이케타브)” 단순히 '그가 기록했다(새겼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가 누구인지 불분명한데 영어 성경은 대부분 그를 대문자(He)가 아닌 소문자(he)로 표기하여, 모세가 기록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이 두번째 십계명도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성경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34장 1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모세가 준비한 두 돌판 위에다 당신께서 쓰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첫언약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두번째 언약이 등장하는
것이다. 두번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사십일 금식을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29-30.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이것은 성물과 접촉하는 것이 거룩해진다는 원리와 일맥 상통한다. 즉 모세는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만 집중했는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 혹은 거룩함이 자연스레
모세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얼굴 피부에 광채 남을 보고” 다시 직역하면, '보라 빛나는 얼굴의 피부가
되었도다'란 뜻으로 모세의 빛나는 얼굴의 광채를 보고 놀라워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두려워하더니” 앞절의 '광채가 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란'은 '뿔이나다'는 뜻도 있다. 아마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는 뿔과 같은 모양으로 빛났던 것같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더 두려워했던 것 같다. 사도
바울은 이 모세 얼굴의 광채를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새언약의 영광스러운 광채로 승화시켰다(고후3:7-18).
31-33.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회중의 어른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가리킨다.“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더라” 이것은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서부터 나는 광채에 백성들이 현혹되어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할 가능성을 배제키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후에 바울이 율법에만 집착하여 그 율법이 가리키는바, 그리스도의 빛나는 영광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어두운 심령 상태를 나타내는 비유로 인용하였다(고후 3:7-18).
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기만 하면 이 율법의 수건이 저절로 벗겨져, 율법이 증거하고 있는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에 대하여
깨닫게 되는 것이다.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하나님과의 언약체결 이후 시내 산을 내려오는
모세의 모습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다. 사십 주야를 하나님 곁에 머물며 하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던
모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그가
40일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음을 알 수 있는 징표였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얼굴이 변화되었다. 이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것이다.
얼굴이 변화되는 것은 다른 존재로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전의 육은 죽고 새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6장 4-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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